경전은 당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고 합니다. 첫 번째 화살까지는 타인과 타의에 의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두 번째 화살은 자격지심과, 나약함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언제나 두 번째 화살이 선명하게 아파오는 것입니다. 현상을 더 깊이 느끼며 파악하려는 인간의 생존본능 때문일까요. 스스로를 멍들게 하고 그렇게 빈틈없이 화살이 꽂힌 채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한 모습인 듯 살아갑니다. 나는 그렇게 예리한 날이 관통한 채로 피를 흘려보내는 당신을 봅니다. 애써 상처를 여미어 보려는 당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도 봅니다. 그 누구도 당신을 위로할 자격 없습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첫 번째 화살을 보냈으니 말입니다.
크누트 함순의 <목신 판>에서 자연에 고립된 남자가 살아가던 것이 떠오릅니다. 키우는 개와 산책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즐거움입니다. 헛된 희망을 화살처럼 남기는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고통스럽게 첫 번째 화살을 맞습니다. 여자가 섬을 떠나는 날 남자는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개를 보냅니다. 개의 숨통을 손수 끊어놓은 채로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두 번째 화살을 맞았습니다. 나는 그것이 거의 불가피했다고 봅니다. 고통을 표현하지 않고는 그 고통의 크기에 대해 알릴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가 손수 죽인 개는 그가 쓴 글이자, 그가 작곡한 선율이자, 그가 자기 피로 칠한 색채입니다. 의지할 곳 없이 텅 빈 시신처럼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남은 피를 다 흘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에 온기를 불어넣던 유일한 가족을 자신의 인생에서 도려내었습니다.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고 들꽃과 물결의 아름다움에서 지극한 기쁨을 느끼던 사람은 이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은 하나처럼 한쪽이 고사하면 다른 쪽의 뿌리도 말라 비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이 모든 것에서 예방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남자는 참전 후 고립되기 위해 들어간 섬에서 결국 모든 위험 요소를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모든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도망쳐도 소용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미래를 우리가 깨닫고 당신으로부터 시작되는 나와의 연결을 애써 재단하지 않아도 된다면 활시위가 눈앞에서 팽팽하게 당겨져도 기다리는 동안의 두려움이 무용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차리게 될까요. 때로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두려움이라는 감각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여겨집니다.
매 순간의 깨달음은 다음 고통의 차례에 거짓말처럼 증발됩니다.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카페에 앉아 있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처럼 따라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어 보지만 그 온도는 사뭇 아무런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저마다 품고 있는 고통의 각기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에 우리는 언제까지고 무지한 채로 살아갈까요. 그 모든 고초를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의심과 경외의 마음으로 손바닥에 난 못 자국에 손을 집어넣어도 영영 모를 마음입니다. 우리는 싯다르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불 위에 앉아 산채로 태워지는 것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와 반려견을 잃고서 섬 이후의 시간은 완전히 물에 잠기고, 눈으로 뒤덮여도 꺼지지 않는 작은 불 위에 앉아 있는 동안은 그의 시간이 무척 느리게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