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t Pigeongram 잃어버린 편지 5. 시신처럼 들어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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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몸통을 잃어버린 일을, 정진하려 애썼던 한 길을, 공들여 했던 생각 하나를 그저 한 쪽으로 밀어 놓고 시신처럼 덮어 놓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은, 그것이 혹여 베일로 덮여 있을지라도 시신의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플래너리 오코너를 생각합니다. 루푸스로 골절된 그녀의 두 다리를. 그녀의 생가 작업실 문 앞에서 남몰래 흐느끼던 그녀의 독자들. 그러기 위하여, 그러한 애도를 위해서 멀리 미국 남부 조지아주 농장에 자리한 그녀의 작업실까지 안 가도 됩니다. 이윽고 그녀가 세상을 떠났던 때와 같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좋은 의미든 아니든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지는 않았겠지만, 조만간 그녀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의 첫날을 또 살아야 하지만 그녀가 부러운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 기나긴 생이 온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억누르려 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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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쓰기 시작한 노트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얼마간 남지 않은 우리의 정신 에너지를 필요로하는 일상이, 너그러우나 손해 볼 마음이 전혀 없는 빚쟁이처럼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립니다. 이 빚쟁이에게 이 삶을 통째로 불쾌한 복리이자를 더하여 내어주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합니다.
종이의 온전한 상태를 참을 수 없어 하는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 으레 그렇듯이 중요한 것은 잘 숨겨야 합니다. 이 작은 파괴자는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분해하고, TV패널을 훼손하고, 리모컨을 자신만의 장소에 숨겨서 찾을 수 없게 합니다. 그리하여 일은 벌어지고 맙니다. 거의 모든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해야만 하는, 마르지 않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이 선생을 피해 잘 놔둔다고 숨겨둔 노트를 정작 저 자신도 찾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어린 아이의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한계를 고려하여 숨긴 이 어른의 공작은, 사실 저 자신도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웃었습니다. 누군가를 향해 파묻어 놓고 설치하는 지뢰, 올가미, 그 모든 방해 공작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만, 그 모두를 설계한 사람도 어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다 다른 마음의 장애도 작용합니다. 바로 처음만 시작한 노트들입니다. 용도를 정하고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했던 처음과 달리 처음만 시작한 노트들이 쌓여 있습니다. 일기의 분위기가 싫어서 날짜도 적지 않고 용도도 점점 불분명해지는 노트를 가끔 발견하게 되면 분절된 신체의 일부 같지만, 어디에 필요했던 기관인지는 모르겠는 복잡한 심경이 됩니다. 제각기 분절되어 흩어져 있는 나의 몸, 나의 기관들을 그 어느때보다 가장 친밀하게 떠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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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비가 내립니다. 그런 날 운이 좋게 카페에 앉아 있던 때가 언제일까요. 하나의 생 안에 전생과 현세가 함께 있는 것일까요. 차 한 잔 마시고, 서점에 가던 시절이 마치 전생처럼 느껴집니다. 까마득한 그 시간과 현재의 삶은 놀랍게도 알 수 없는 내세를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또한 여겨집니다. 비오는 날 창가 자리에서 마른 꽃잎을 태우듯 또 하나의 순간이 사그라드는 것을 지켜봅니다. 생의 의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당신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이러한 순간을 조금 희석시켜줄 삶의 곳곳의 안료들을 완전히 소진한 채로, 새로 채울 것 없이 사개를 맞춘 오래된 나무 수납함의 경첩이 다시 열리거나 닫힐 일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그저 그렇게 재료가 바닥나버렸습니다. 내가 어느 유리문에 비치는 나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때, 당신 얼굴의 잔상이 떠오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는 그 아무에게서 스스로 떨어져 나와 흘러가버린, 수챗구멍에 겨우 걸려 있는 아이의 고무줄 끈처럼, 다시 떠오를 일 없는 파편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얼마 전 조정된 평균 수명에 대해 생각합니다. 운이 없다면 대략 40년 정도를 이 상태로 버텨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것은, 비록 파편이 되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지만 흩어져버린 조각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아 처음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일지라도 맞춰 놓고, 숨을 불어 넣고, 생기가 돌기를 기다려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뺨에 핏기가 되살아날 때, 나는 그것을 들어 올리고 안아주겠습니다. 마치 당신을 끌어안듯이 아주 오랫동안 이 포옹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뉴욕타임스, 『작가님, 어디 살아요?』, 오현아 옮김, 마음산책,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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